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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 선언문

우리는 지금 인류가 축적해 온 문명의 취약함을 생생히 체험하고 있으며, 인류사회의 민낯을 목도하고 있다. 감염병이 창궐하면서 불신과 혐오가 증폭되고 배려와 화합은 위협받고 있으며,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욱 많은 고통이 전가되고 있다. 인간다운 존엄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할 사회안전망의 수립이 얼마나 시급하고 절실한 과제인지를 깨달아가고 있으며, 인류사회는 바야흐로 문명전환의 소용돌이를 겪고 있다.

한국은 우수한 건강관리시스템과 개방적이고 투명한 국가적 대응, 그리고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방역에 성공한 나라로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우리 민족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고유의 공동체 의식을 발휘함으로써 그것을 극복했지만, 가계의 붕괴, 중산층 위축과 양극화 심화, 저소득층에게의 고통 전가와 같은 현상들 역시 양상을 달리해 반복되어 왔다. 이번의 과정에서도 소외와 갈등이 증폭되고 사회적 격차와 위화감이 확대되었다. 코로나19로 초래된 문명전환의 위기 속에서 새로운 가치의 정립과 제도 수립에 대한 배전의 관심과 노력이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양적 고도성장의 후유증을 아직도 앓고 있다. 경제성장 정도보다 삶의 질이 뒤쳐져 있음을 여러 통계들이 보여주고 있거니와, OECD 국가 중 자살율은 가장 높지만 출산율은 가장 낮은 국가라는 불명예도 오랜 기간 안고 있다. 많은 한국인들, 특히 젊은이들은 삶의 희망과 지향점을 찾는 데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속가능성장의 이념에 더욱 주목하고 보편가치의 확산과 정착에 힘을 쏟으며, 협력과 연대와 상생의 가치를 실천하고, 포용성장의 국가시스템을 성숙시켜 인문사회적 가치를 높여 나가는 것이 지금의 한국사회에 부여된 숙제인 것이다.
우리는 침탈과 전쟁이란 굴곡진 현대사와 어려운 경제적・지정학적 여건 속에서도 높은 수준의 소프트파워를 키워왔지만, 아직 우리의 경제 규모나 종합적 국력에 비해서는 낮게 평가되고 있다. 문화적이고 이지적인 요소들의 세례와 정서적 감동의 과정을 거쳐서 형성되는 소프트파워가 생명력이 길고 구체적 태도 변화까지를 야기하는 힘을 지닌다는 점을 살핀다면,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통해 세계적인 문화를 창조한 나라’,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달성한 문화적 저력과 시민의식을 가진 국민’, ‘빠른 속도로 과학기술을 발전시킨 나라’ 등등 전통문화유산과 근현대 시기의 역동적 경험 및 성과까지를 ‘K-culture’의 핵심자산으로 발신할 수 있어야 하며, 우리의 문화상품 역시 한국 소프트파워의 담지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 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는 K-Culture의 지속적 발전과 Agenda 확산 그리고 소프트파워 제고를 위한 노력을 이어나갈 것이다.

아담 스미스는 나라의 진정한 부는 그 국민의 창의적 상상력에 뿌리를 둔다고 했다. AI와 Big Data에 기반한 산업구조 변화에의 능동적 대처를 위해서도 인문사회 분야 연구의 중흥과 인재 양성이 절실한 국가적 과제인 것이다. 소프트웨어 기반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추세인데, 한국의 산업구조는 아직 하드웨어 중심의 양상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인문사회 분야의 전문성 그리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예지력과 통찰력이 그 발전을 추동하는 미래형 산업을 번창시키려면, 인문사회 분야의 소외 현상이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자유와 복지를 신장하고 인간의 존엄성 구현에 더욱 기여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도, 인문사회와 과학기술 분야의 효율적인 협업과 융합을 달성하기 위해서도, 4차산업혁명의 성과가 일상화된 미래를 선도할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서도, 인문사회 분야의 중흥과 학문의 균형발전을 위한 법제의 정비와 제도 구성을 서둘러야 한다.

우리는 20여 년이 넘도록 학계의 요청이 외면되고, 인문사회 분야가 여전히 존폐의 위기 속에 방치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한다. 인문사회 분야 본연의 가치와 존재 의의를 깨닫지 못하고, 연구자들의 공공적・사회적 책무의식을 진지하게 살피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국가연구개발예산의 1% 남짓 정도만 인문사회 분야에 배정되는 현실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인류사회를 선도하는 국가들은 결코 인문사회 분야를 홀시하거나 시장의 선택에 내맡기지 않는다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오늘 우리 인문사회 분야 연구자들은 모든 사회 계층에 꿈과 희망이 깃들게 하고, 한국의 밝은 미래를 구현하기 위해 아래와 같이 선언한다.
  • 하나,
  • 법제 정비와 국가급 학술자문회의 설치를 통해 인문사회 분야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발전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 하나,
  • 학술정책연구 전문기구 설립을 통해 연구자 주도의 학술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 하나,
  • 인문사회 분야의 학문적 특수성을 외면하는 제반 정책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 하나,
  • 실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정책 수립을 통해 인문사회 분야 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증액해야 한다.

2021년 3월 30일

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